영어 회화에서 We’ll see는 매우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하다.
미래형 문장이고, 단어도 어렵지 않다.
그래서 많은 학습자들이 이를 직역영어 방식으로
“우리가 보게 될 거야” 혹은 “두고 보자” 정도로 이해한다.
문법적으로 틀린 해석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대화에서 We’ll see는
그렇게 직선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직역영어로 접근하는 순간,
이 표현이 가진 거리감과 유보의 뉘앙스를 놓치게 된다.
We’ll see는 단순한 미래 예측이 아니다.
그것은 확답을 피하는 방식이자,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하는 전략이다.
직역영어는 문장의 겉뜻을 설명해 주지만,
화자의 태도까지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We’ll see를 정확히 번역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상대의 반응이 미묘하게 식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 글에서는 We’ll see가 왜 직역영어로 받아들여질 때
애매해지는지, 그 오해의 구조를 살펴보려 한다.

We’ll see와 직역영어의 첫 번째 간극
많은 학습자들은 We’ll see를
직역영어로 “두고 보자”라고 배운다.
그래서 누군가가 제안을 했을 때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대응한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을 보자.
M: “Are you coming to the party tonight?”
W: “We’ll see.”
직역영어로는 단순히
“나중에 보자” 혹은 “두고 보자” 정도다.
하지만 실제 영어 대화에서 We’ll see는
확답을 피하는 표현에 가깝다.
이 문장은 명확한 참석 의사 표현이 아니다.
직역영어는 중립적 미래 표현처럼 보이지만,
실제 맥락에서는 다소 거리를 두는 신호로 읽힌다.
그래서 상대는
“아, 아마 안 올 가능성이 크겠구나”라고 느낄 수도 있다.
We’ll see는 단순히 시간을 두고 보자는 말이 아니라,
지금은 확실히 말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직역영어는 이 태도의 결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We’ll see가 직역영어로는 유보의 태도를 담지 못하는 이유
We’ll see는 종종 부드러운 거절로 쓰인다.
겉으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뉘앙스를 담는다.
직역영어로 “우리가 보게 될 거야”라고 해석하면
이 미묘한 온도 차가 사라진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친구가 무리한 여행 계획을 제안한다.
M: “Let’s drive six hours this weekend
and come back the same day.”
W: “We’ll see.”
이때 We’ll see는
정말로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지금 당장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신호다.
단호하게 “No.”라고 말하기 부담스러울 때
We’ll see가 등장한다.
이 표현은 시간을 두겠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확신을 주지 않겠다는 태도다.
직역영어는 문장 구조를 그대로 옮기지만,
영어 화자들은 이 표현으로 관계의 긴장을 조절한다.
단칼에 거절하지 않으면서도 기대를 키우지 않는 방식이다.
그래서 We’ll see는 사회적 완충 장치처럼 기능한다.
직역영어로는 이 완충 기능이 드러나지 않는다
We’ll see와 직역영어의 맥락 차이
We’ll see는 상황에 따라 온도가 달라진다.
다시 이런 대화를 보자.
Child: “Can we go to the amusement park this weekend?”
Parent: “We’ll see.”
이 경우 We’ll see는 완전한 거절이 아니다.
그러나 확답도 아니다.
직역영어로는 단순히“나중에 보자” 정도로 번역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능성을 열어두되,
책임 있는 결정을 유보하는 말이다.
부모의 We’ll see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는다.
같은 표현이라도
말투와 맥락에 따라 의미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We’ll see는
문장 그 자체보다 맥락이 더 중요한 표현이다.
직역영어로는 이 맥락 의존성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We’ll see를 직역영어로만 배웠을 때 생기는 오해
많은 학습자들은 We’ll see를
중립적인 미래 표현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가볍게 긍정의 의미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영어 화자에게
We’ll see는 종종 소극적 태도로 들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열정적으로 계획을 설명한 뒤
“We’ll see.”라는 답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상대가 확신이 없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직역영어로는 긍정과 부정이
모두 열려 있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실제 사용에서는
기대치를 낮추는 신호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We’ll see는 책임을 유보하는 기능도 한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직역영어는 이를 단순히 시간의 문제로 번역하지만,
실제 영어에서는 태도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We’ll see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장 해석을 넘어서야 한다.
직역영어는 의미를 고정하지만, 실제 대화에서 We’ll see는
가능성의 문을 살짝만 열어둔 채 거리를 유지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이 문장을 단순한 미래형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유보와 완충의 뉘앙스를 놓치게 된다.
직역영어를 벗어나야
We’ll see의 진짜 온도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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